문학
바람의 끝에서
이 얀
2025. 3. 2. 01:56
구름은 어느덧 산맥을 넘고 있었다.
온갖 바람을 등에 지고 흘러온 구름은
산마루 저편에서 기다리는 햇살이
자신의 눈물과 닮았음에 놀랐다.
억새밭이 능선에 몰려들어
한 번쯤 머뭇거릴 틈을 주면
지는 해가 마지막으로 붉은 이유를
비로소 아프게 깨닫는 것이었다.
길이 끝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평온한 순간이었다는 것도
길이 끝나버린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었다.
바람이 지나온 자리마다
한때의 머뭇거림이 잎새에 남았고,
억새는 그 손길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은 것들은
결국 잊혀지는 법,
떠도는 바람이 그리움을 말할 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외롭다고 숱하게 말했었지.
정말 외로워지는 순간은
그 말조차 입술에서 지워지는
그때라는 것을.
그립다, 그립다 되뇌었지.
그건 오히려 따뜻함이었어.
정말 그리워지는 순간은
그리움마저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
그때라는 것을.
그리워서 불렀던 이름들은
되돌아갈 길이 있는 동안만 빛났고,
진정 외로워진 순간,
입술 끝에서도 사라져갔다.
외롭다, 그립다.
이 말들이 여전히 내 것이던 때가
사실은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다는 걸.
이제 바람은 어디로든 흘러가야 한다.
밀려온 것인지, 스스로 걸어온 것인지,
누군가 묻지 않는다면 나조차 모를 일.
다만, 이 흐름 끝에 닿았을 때,
내 흔적마저 바람이 되길.
머물렀던 자리도, 건넜던 강도
손끝에 스미지 않는
저물녘의 바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