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외면
이 얀
2025. 2. 6. 06:00
어느 날 문득, 외면하는 법을 배웠다.
내 곁을 스치는 모든 사람을
다 가슴에 품고 손잡아주며 살기엔
이미 두 손이 너무 무겁고,
마음 한쪽은 오래전부터 허약해져 있었다.
귀가 닫힌 것이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소리를 머물게 하지 않을 뿐.
물결처럼 밀려왔다 흩어지는 말들은
애써 붙잡지 않아도
시간이 가면 저절로 가라앉는다.
손이 게을러진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지 않을 뿐.
때로는 펴놓은 손바닥 위에
햇살이 잠시 머물다 가게 두고,
때로는 빈손이 주는 가벼움을 배운다.
발이 느려진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길을 서둘러 가려 하지 않을 뿐.
돌아가도 좋고, 잠시 멈춰도 괜찮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 하나에도
머물러 바라볼 이유가 있다면.
나는 이제
눈으로 바람을 듣고,
귀로 꽃잎이 지는 소리를 본다.
손끝으로는 시간의 결을 만지고,
발끝으로는 기억의 흔적을 헤아린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니
보고 싶지 않은 건 넘겨보는 여유도 생기고
안 듣고 싶은 건 흘려버리는 배포도 생겼다.
그렇게 놓으려 지나온 빈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