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라진 시간의 잔향
이 얀
2025. 2. 5. 10:57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내 눈앞의 시간이 흘러들어온다.
빛이 감각 되어 손끝에 닿고,
세상이 고요히 숨을 죽인다.
카메라는 그 빛을 삼키고,
나는 그 삼킨 빛을 들여다본다.
렌즈 속 피사체는 자신을 스스로 의식한다.
어깨가 경직되고,
표정이 잔잔한 파문처럼 굳어간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기를 바라지만,
그 자연스러움조차 연출된 몸짓이 된다.
나는 기다린다.
억지웃음이 사라지고,
카메라를 잊은 채 익숙한 자신이 되는 순간을.
기다림 끝에 포착된 얼굴에는 빛이 고여 있다.
해가 질 녘 창문에 맺히는 황금빛 얼룩처럼,
순간의 감정이 사진 위에 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은 슬픔일 수도, 기쁨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감정을 채집하는 사람이다.
렌즈로 영혼을 포획하려 할 때마다,
나도 함께 그 안에 갇힌다.
피사체가 가진 그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낀다.
그 무게는 때때로 부드럽고,
때로는 벽돌처럼 단단하다.
어떤 표정은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어떤 눈빛은 한순간에
나를 휘감아 놓아주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것은 기억을 새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의 결을 만지고,
감정을 마시는 일이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 빛을 따라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 장의 사진이 내 손에 남아 있을 때,
나는 깨닫는다.
내가 찍은 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라진 시간의 잔향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