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도 강이 있다
새벽 네 시,
신촌 골목 어귀에
부스스한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어젯밤을 마저 털어내지 못한 사람들,
어딘가 표류하다 이곳에 닿은 얼굴들이다.
창가에 앉은 남자는
싸구려 위스키를 천천히 흔들다 말고,
마치 깊은 바다를 들여다보듯 잔을 응시한다.
그의 손끝은 색이 바랜 기타 줄처럼 거칠고,
술에 젖은 입술은
어제와 똑같은 노래를 웅얼거린다.
작은 테이블 끝에선
한 여자가 손톱으로 담뱃재를 털어내며
유리잔을 똑똑 두드린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꺼내 놓는 것은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잡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잡담은 어쩐지 뒷맛이 씁쓸해서,
듣고 난 사람들의 눈동자가 조금씩 흐려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세 남자가 모여 앉아,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인다.
한때는 시를 썼고, 한때는 건축을 했으며,
한때는 길에서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조각처럼 주고받으며,
마치 그것이 여전히 현재인 것처럼 웃는다.
"어떤 건물은 지어질 때보다
무너질 때가 더 아름다워."
누군가가 말하고, 그 말은 부서진 벽돌처럼
공중을 떠돌다 사라진다.
새벽 다섯 시,
골목 끝에서 빛이 서서히 번진다.
공중에 떠돌던 말들이 하나둘 가라앉고,
마지막까지 남은 자들만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일으킨다.
어디선가 종이 울리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듯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추켜든다.
그리고 마침내,
빌딩과 빌딩 사이로 강이 열린다.
흐릿한 물결 위로
작은 배 한 척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무런 소리도 없이 가라앉는다.
그 강물 속으로,
누군가의 낡은 구두 한 짝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마치 깊은 꿈속으로 사라지듯,
도심 한가운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