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빛나는 우연

이 얀 2025. 1. 24. 04:59

가끔은  무심코 걷다가
예상치 못한 보물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마치 주머니 속에 넣어둔 지 오래된
지폐 한 장을 우연히 찾았을 때처럼,
혹은 골목길에서 예기치 않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마주했을 때처럼.
나는 그런 순간을 ‘빛나는 우연’이라 부른다.

우연은 불시에 찾아온다.
계획도 없고, 복잡한 계산도 없이,
스르르 흘러들어와 가슴을 두드린다.
오래전 나는 부산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단순한 업무였다.
계약서를 검토하고,
몇 마디 정리된 말을 덧붙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도시가 나에게 안긴 것은
단순한 업무만이 아니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차를 타기에는 애매한 거리였고,
걷기에는 다소 멀었다.
하지만 그 어중간함이 나를 걸음으로 이끌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무작정 발길을 맡기자,
길은 나를 작은 골목으로 인도했다.

골목을 따라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헌책방이 하나 보였다.
낡은 나무 간판, 유리창 너머 빼곡히 쌓인 책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가느다란 풍경 소리가 울렸고,
서가마다 고요한 책 향기가 배어 있었다.
주인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에 잡히는 책을 펼쳐 들었다.

책 속에는 오래된 편지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내려다 전하지 못한 듯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네가 이곳에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글을 발견하길 바라.”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따스함에 사로잡혔다.
어떤 사연인지도 모른 채,
다만 그 문장 하나가 나를 감싸안았다.

책방을 나설 때쯤,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닷가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이 모든 것이 ‘빛나는 우연’임을 깨달았다.
예정에도 없던 발걸음이
나를 새로운 이야기로 이끌었고,
그 이야기가 나의 하루를 온전히 채웠다.

때때로, 삶은 거대한 계획보다
작은 우연들로 빛나곤 한다.
마치 덤처럼 얹어진 순간들이
우리의 기억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부산을
내 마음속 보석함에 소중히 담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