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겨울나무의 서사

이 얀 2025. 1. 4. 02:58

차갑게 얼어붙은 대지 위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잎사귀는 바람에 스러지고,
뿌리마저 얼어붙을 듯한 계절.

그러나 땅속 깊이,
숨소리마저 얼어드는 어둠 속에서
그 나무는 묵묵히 기다렸다.
언제 올지 모를 봄의 기척을,
햇살의 손길을.

밤이 길어질수록
그 기다림은 더 깊어지고,
겨울의 바람이 거세질수록
그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이 얼음벽을 뚫고 찾아와
나무의 굳은살을 어루만질 때,
그 순간 나무는 알았다.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생명이었음을.

그리하여,
눈 녹아 흐르는 대지 위에
연둣빛 잎사귀를 펼쳐내며,
온몸으로 노래했다.
"모든 겨울은, 모든 추위는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노라."

그 나무는 말하지 않았다.
봄의 하루가
얼마나 짧고 유한한지.
다만 지금 피어나는
순간의 빛으로
그 긴 기다림을 채웠다.

슬픔과 후회는 없다.
단 한 번의 꽃을 피워낸 것으로
겨울은 봄을 준비했으니,
삶은 완전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