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겨울

이 얀 2024. 12. 27. 18:04

얼마나 걸어왔을까,
바람은 흩어지고
눈발 사이로 내가 지나온
길 위의 발자국이 희미해진다.

스스로를 닦아내려는 듯
헐벗은 나무들은
하얀 이불을 덮으며
차디찬 고요를 품는다.

겨울은 부드러운 칼날,
날카로운 듯 아리지만
그 속에 감춰진
따스한 쉼의 의식.

땅에 누운 잎사귀들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고
바람 속에서
자신의 소멸을 받아들인다.

멈춤이란,
바라볼 여유를 주는 시간.
내면의 눈이 밝아지고
나를 이룰 조각들이
손끝에 닿는 순간.

겨울은 대지의 숨결처럼,
쉼과 정리의 계절.
그리고 그 끝에서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가장 깊은 생명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