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밤에

이 얀 2024. 12. 20. 00:51

그늘은
이름을 잃은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렸다.
누군가 걸어 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한 음씩 흘려보내는
비어 있는 선율이었다.

당신을 부르던 소리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제는 한 줌의 침묵이 겨울의 숨결을 삼키며,
마치 투명한 언어처럼 당신의 이름을 적는다.
손끝이 가리킨 방향에는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 너머엔 늘 끝이 안 보이는 곳이었다.

빛은 당신을 모서리로 몰아넣었고,
그곳에서 당신은 별의 형상을 빌려 도망쳤다.
별이 된다는 건 닿을 수 없는 약속이 되는 것.
나는 당신의 그림자를 따라갔지만,
발밑에는 자꾸 다른 그림자들만 겹쳤다.

밤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내 주머니에 스며들었다.
한 겹, 두 겹.
밤은 다르게 생긴 기다림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그 기다림의 끝은 당신일까?
아니면, 당신이 부재한 시간의 뒷면일까?

언덕 아래에
누군가 남기고 간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오래된 노래처럼
반쯤 사라진 음표로 남아
붉은 잎사귀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 이야기의 끝을 들어 올려
당신에게 묻는다.

"너무 멀리 간 사람은, 돌아올 수 있을까?"

하지만 언덕 위로 기울어진 그림자는
답 대신, 또 다른 노래의 시작을 끌어내렸다.
그 노래는 도돌이표를 잃은 채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움의 무게는 어디로 향할까.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밤은 모든 것을 감췄다.
그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