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첫눈 내리던 날

이 얀 2024. 11. 28. 00:08

동해 바닷가 묵호역에 첫눈 내리던 날,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흩어졌다.
흩어진다는 건,
땅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서로의 온기를 무너뜨리는 일.

그들의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는
밤하늘의 무늬 같았고,
그 머리 위로 떠 있는 촛불 하나가
사랑과 소망하는 마음이 더 해지듯
어렴풋이 켜졌다.

사랑이 깊어진다는 건
껍질이 벗겨진 슬픔의 맨살 위로
황금빛 강 하나를 조용히 흘려보내는 일.
이웃의 침묵에 귀 기울이며
따스한 물살에 얼굴을 담그는 일.

노래가 깊어진다는 건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
투명한 재스민 향기가 남모르게 스며드는 일.
세상의 모든 아픔이
그 향기에 시나브로 젖어 들기를.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
그 몇 주머니의 빛을 어디로 가져가야 할까?
촛불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마다
누군가의 발걸음은 더 멀리, 더 깊이
빈자리 속으로 스며들었네.

그리고 마침내,
사랑 담긴 주머니는 무거워지고
노래는 깊어지며
이 땅 위 모든 발걸음은 촛불이 켜지듯
결국 별들의 꿈을 꾸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