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저녁
이 얀
2024. 11. 27. 01:21
창틀을 타고 오르던 한 줄기 빛이
휘청이며 조각난 파편으로 흩어질 때,
누군가의 숨소리가 지나간 자리.
닮아있는 무늬는 얇은 장막처럼 떨리고,
투명한 무게의 고요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저녁은 언제나 그렇게 찾아왔다.
의자 다리에 걸친 달빛의 균열,
이야기가 끝난 책장 틈새의 한 줄기 초라한 빛,
그리고 기울어진 시소처럼
흐릿하게 가라앉는 시간.
시간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텅 빈 유리잔의 고독 같은 허전함이 남는다.
오직 흘러내리는 빛의 조각들과
허공에 흩어진 무늬들만이
조용히 머물며 끝내 사라질 줄 모른다.
너는 묻는다.
저 시간이 머문 끝에서 무엇이 들리느냐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대답은 언제나
잊힌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 있다.
그곳은 너와 나,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 찬 고요의 공간.
침묵은 더 깊어지고 어둠은 빛의 잔해를 감싼다.
사라짐은 그렇게 모든 것을 품고도
아무 흔적 없이 공허함만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