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무
길 끝은 아득하다.
돌아보는 순간, 더 멀어진다.
바람은 지나온 계절의 내음을 품고,
누군가의 낡은 추억을 일으켜 세운다.
나뭇잎들은 바람에 몰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자리를 찾는다.
어제의 녹음은 오늘의 황혼으로 누웠고,
회귀하는 몸부림 속에
누군가의 발걸음에 밟혀도 서럽지 않다.
그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바람은 긴 손끝으로 그들의 등을 쓸어내린다.
비는 천천히 부드럽게 내리는데
왜 가슴 속엔 빠르고 거칠게 박힐까.
이 세상의 아픈 모든 눈물도
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을 수 있을까.
젖은 대지는 아직 마를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지는 울지 않는다.
대신 젖을 뿐이다.
그 젖음은 비의 무게를 흡수하며,
부서진 것을 다시 이어주고
사라진 것을 다시 불러들인다.
나무는 흔들리며 서로에게 다독이고,
꽃은 꺾이면서 또다시 피어오른다.
모든 것은 자신만의 고집으로
아파하고 부서지며 또다시 일어선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바람과,
뿌리로부터 아무것도 떼어낼 수 없는 나무는
평생을 서로에게 스치며 속삭인다.
"나는 너를 흔들러 왔어."
나무는 대답한다.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나는 그냥 서 있을래."
길의 끝은 없다.
그러나 그 끝없는 흐름 속에서
모두는 나아간다.
젖은 대지 위에서,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떨어진 잎사귀의 자장가 속에서.
오늘은 쓸쓸한 가을비가 내리지만,
내일은 찬란한 해가 뜬다는 믿음.
그러나 그 믿음조차 흔들리는 세상에서
모두가 미로 같은 길을 찾으려 애를 쓴다.
삶은 늘 떠나지만 사랑은 언제나 머문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며 속삭인다.
“아프지 말아라, 젖을지라도.”
삶은 늘 사랑이었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