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비탈길
이 얀
2024. 11. 23. 03:53
가파른 언덕길 그림자 아래,
비탈은 무늬 없는 천으로 그려진다.
발끝은 모호한 언덕을 짚고서서,
손끝으로 흔들리는 바람의 결을 쫓는다.
사람들 모두는 자신의 경사를 짊어지고 간다.
부서진 상실, 가라앉은 허무,
모두가 그 안에 갇혀있다.
한때는 낯선 비탈이 서로 겹쳐
촛농처럼 흐르던 밤이 있었다.
불꽃이 속삭이던 언어,
그 언어가 조용히 꺼져가던 순간.
그리고 또다시,
우리는 고통스러운 돌덩이를 굴린다.
다시금 올라갈 이유를 찾으며.
비탈을 오르는 걸음마다 미완의 의미가 박힌다.
파편처럼 흩어진 존재의 이유가,
때론 날카롭게, 때론 부드럽게 가슴을 뚫는다.
그곳에 피어나는 생채기,
그 속에서 쉼 없이 호흡 하는 것.
어느 날,
우리 모두 유성처럼
비탈 끝 하늘을 그을리며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발끝에 남겨진 흔적은
흐릿한 빛으로나마 계속 울릴 것이다.





